소리의 변천

2008. 3. 12. 00:50

- 소리의 변천 -

  우리들은 일상생활 중에 24시간 항상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람의 이야기 소리, 웃고 떠드는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자동차소리 등 온갖 잡다한 소리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그런 소리들을 본능적으로 구별할 수 있고, 심지어 소리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창출해낼 수도 있다. 팝, 록, 뉴에이지 등 여러 장르로 분화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음악 앨범이 매일같이 쏟아져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현재, 더 나아가 실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우리가 아는 소리의 정체성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미래엔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과거에 진행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유추하는 것이 어떠할련지. 그리하여 먼 옛날, 인간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에서 출발해보자. 현재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말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8만 년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원시인들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은 약 60만 년 전부터라 하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노래라는 것이 아,오,우 따위의 단모음 소리를 고저, 장단, 억양을 붙여 일종의 신호음을 만든 정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시인들은 벼락, 폭포, 야생동물의 으르렁 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주변에서 나는 이 모든 소리들에 매우 민감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냥꾼은 자신이 애용하는 활시위를 잡아당길 때, 마치 손으로 뜯는 듯한 묘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된다. 화살 부는 통으로 짐승을 잡기 위해 독화살을 불어 날릴 때에도 그는 또한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인간들은 주위 환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동과 공명 같은 소리의 원리를 차츰 깨우쳐갔다. 이런 본능적으로 쌓아온 경험을 통해 얻은 일종의 과학 지식을 가지게 되니 소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욕망이 악기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처음 악기는 간단했다. 동물의 가죽을 벗겨 나무와 엮어 북을 만들어 위급한 신호나 흥겨운 축제에 리듬을 붙여주는 의도로 주로 사용했다. 어떤 아프리카 부족은 악기를 저 세상과 교류하는 도구로 여겼으며 때로는 그 악기 앞에 음식을 공양하거나 희생 재물을 드리기도 하였다. 사회가 만들어지고 악기가 차츰 발달하면서 금속 악기나 청동 악기들이 탄생했고 이 악기들을 통해 만들어낸 음악은 곧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가축 떼를 지키며 심심해하던 목동은 작은 피리를 부르며 즐거워했고 종교 행렬이나 장례식, 운동회, 전쟁의 승리 후의 개선식 등 여러 행사에 있어서 음악은 항상 함께 했다.


 ‘우리 귀에 들리는 음악에는 어떠한 규칙이 보이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이런 생각에 따라 음에 대해서 최초로 분석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수는 만물을 지배 한다’라고 말한 피타고라스였다. 길이가 다른 두 줄을 튕길 때, 그 두 줄의 길이의 비가 간단한 분수로 표현될 때 듣기 좋은 화음이 생성된다는 주장이었는데, 줄의 길이가 2:3이면 이 간격을 ‘완전 5도’라 하여 듣기에 가장 편안한 화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피타고라스의 발견은 기하학이 아닌 수를 기본으로 하는 규칙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밝힌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소리와 숫자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연구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당시의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실험적인 발견을 물리적인 결과로 결부시키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즉, ‘왜 그런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면 물리학은 훨씬 더 이른 시기에 태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한 현대 과학이 말해주는 개괄적인 답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현재 듣는 음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는 음악적인 음조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의 귀에 들리는 소리 중에는 소위 잡음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공기압의 변화가 불규칙적이라서 귀의 고막을 불규칙적으로 진동시킴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대로 아름다운 음악의 음조의 특징은 잡음과 달리 공기압의 변화가 주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음악가들은 이 반복되는 패턴의 구체적인 형태를 ‘음색’이라는 특성으로 표현하고, 공기의 압력이 변하는 정도인 ‘크기’와 압력의 변화가 반복되는 주기인 ‘높이(고저)’로 이 세 가지의 특성의 조합으로 모든 음악의 음조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와 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20세기에 들어서 음을 전기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기에 완벽히 정리된 것인데도, 옛 시대의 많은 음악가와 악기의 탄생과 세계 곳곳의 고유한 문화적 감성의 노래가 이어지고 발달한 것은 과학적인 분석보다 경험에 의한 의식적인 분석이 소리에 대한 관점에 좀 더 확실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바흐의 유명한 ‘G선상의 아리아’를 들어보라. 지금 들어도 아름답지 않은가? 피타고라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어 현대에 이르러 ‘음악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생겨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역사적인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오랫동안 인간은 소리의 과학을 의식적으로 터득하여 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 공기의 흐름을 막으면 어떠한 소리가 나고 새로운 울림이 나는지 선조들은 이해했고, 현대에 들어서 선조의 여러 지식을 발판삼아 우리는 좀 더 형식적이고 과학적으로 소리를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전기제품의 소리를 발생, 전파, 수신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더 나아가 소리를 실질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소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넓혀야 했다.


 사실, 관점을 넓힌다 해도 소리를 바다의 파도가 전파되는 모습처럼 연상하면 그만이다. 물론 여기서 다른 점은 파의 진행방향과 파가 진행하는 공간인 매질의 입자가 진동하는 방향이 틀린 것인데, 파도의 경우, 파의 진행방향과 매질 입자의 진동방향이 수직이면서 평행한 반면, 소리는 그 방향이 반드시 평행하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손바닥만 한 용수철로 이해할 수 있다. 용수철을 원기둥이 되게 세운 상태에서 양끝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보자. 이 때, 그 용수철을 바라보면 얼룩말처럼 검은 줄무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용수철이라는 매질이 압축된 부분이다. 이렇게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파가 전파되는 모양을 본떠서, 공기가 진동하면서 전파되는 것이 우리가 듣는 소리가 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임의의 물체가 움직일 때, 그 주위의 공기를 교란시켜 압력을 변화시키게 된다. 물론 물체의 속도가 느리면 공기는 물체의 주변을 흘러갈 뿐이겠지만, 물체가 충분히 빠르게 움직인다면 공기가 물체의 주변을 조용히 흘러갈 정도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움직이는 물체에 의해 공기가 압축되고 압축된 공기가 다른 공기를 밀어내며, 밀린 공기는 다시 압축되어 또 다른 공기를 밀어내는 식으로 일종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음파(소리)가 전달되는 원리라 할 수 있겠다. 다시 앞의 용수철을 더욱 빠르게 흔들어보자. 내 팔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 만큼 용수철에는 더 많이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몸의 명칭을 붙이듯 여기서도 명칭을 붙여보자. 줄무늬 사이 간격을 파장이라고 하고 파장을 한 번 통과한 시간을 주기라 하자. 그리고 여기서 주기의 역수는 1초에 통과한 파장의 개수가 될 것이고 이를 주파수 또는 진동수라 이름 붙이자. 이름 붙이는 것이 아직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듯하지만 과학은 이렇게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돌아와서 용수철을 빠르게 흔듦으로써 유추해본 가운데 용수철에 에너지를 많이 가할수록 줄무늬가 많이 생겨 파장이 짧아지고 주파수가 높아진다는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에 살펴봤듯이 압력의 변화가 반복되는 주기의 역수인 이 주파수에 따라서 소리의 높낮이가 결정된다. 즉, 주파수가 높을수록 사람은 높은 고저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타를 칠 때, 줄의 길이를 점점 짧게 하여 튕길수록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짧은 소리를 낸다. 여기서 우리가 튕길 줄의 길이를 앞에서 말한 파장이라 생각한다면 파장이 짧을수록 높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주파수와 소리의 높낮이는 비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주파수는 전기가 생활화되면서 많이 활용되는 명칭이다. 인간의 목소리를 주파수로 따져보면 약 100~5000Hz 정도인데 이것을 전기적 신호로 바꾼 후 전송하여 다시 음성 신호로 바꾼다면 우리가 쓰는 간단한 전화의 원리가 된다. 이런 간단한 원리로부터 라디오, 텔레비전 같이 응용되어 집 안에서도 생생한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으니, 우리는 소리를 바라본 관점을 잠시 바꾼 것만으로 집에 편히 앉아 소리를 공유 받을 수 있게 된 시절이 온 것이다.

 이렇게 소리와 전기가 피를 나눈 밀접한 관계가 성립된 배경으로는 전기의 여러 장점이 소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전기는 손쉽게 진동의 횟수를 변경할 수 있어서 능수능란하게 소리의 진동수를 재현할 수 있다. 요즘에는 신디사이저와 같이 전기적으로 음향을 합성하여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의 음색을 거의 비슷하게 재현해낼 수 있기까지 하다. 이것은 임의의 음색이 여러 가지 배음(정수배의 진동수에 의한 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정아래에서 푸리에라는 수학자가 발견한 일종의 함수를 이용하면, 음색을 추출하거나 배음의 함량을 조절해 합성할 수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나눌 때 소리를 다르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대화할 때 입의 모양은 입 안에 있는 공기의 진동 모드를 결정하는데 일부 모드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에 의해 진동이 유발된다. 이 과정에 일부 배음의 세기가 다른 배음보다 커지게 되고, 입의 모양을 바꾸면 다른 진동수를 가진 배음이 우세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다. 즉, 특정한 진동수가 강조되어 목소리를 높여도 같은 발음으로 들리게 되므로 우리들은 입모양의 조합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자유롭게 흘러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보았던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화음은 아마도 이 배음의 진동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퉁겨진 줄의 처음에는 몇 개의 배음이 강하게 섞여있는데 줄의 길이가 2:3이면 짧은 줄의 두 번째 배음은 긴 줄의 세 번째 배음과 진동수가 같다. 즉, 그 음들의 진동수가 간단한 비율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음을 눌렀을 때, 우리가 듣기에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단지 개괄적인 답일 뿐, 왜 높은 배음들이 일치하면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지 현재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화음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귀가 이런 수학적인 계산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미적 감각을 느끼는 중추가 따로 있는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소리를 파동으로 대치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특징은 더 많다. 동굴이나 지하실에서 소리를 내보면 울림이 일어나듯이 소리는 벽을 만나면 반사한다. 이 반사하는 특성을 정량적으로 다루어 응용하면 건축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허나 그렇다고 꼭 복잡한 신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음악당 중에 음향이 가장 뛰어나다는 콘서트홀을 보면 놀랍게도 1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소리의 반사를 적절하게 이용한 흔적이 보인다. 이 홀들은 전형적인 직사각형 평면에 직육면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형태는 천장이 높고 홀의 폭이 좁아서 측면의 벽을 통한 음의 강한 반사가 빠른 시간 내에 객석에 도달한다. 또, 공간이 충분히 커서 소리가 남아있는 잔향시간이 길어 한층 웅장한 느낌을 더한다. 그리고 홀의 천장을 보면 화려한 장식으로 울퉁불퉁하게 설계가 되어 있는데 이는 소리를 여러 공간에 골고루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재료 상으로도 이 홀들은 대부분 목재를 써서 반사할 때 전 주파수대에 걸쳐서 고른 음향을 걸러준다. 반면, 요즘의 많은 연주장의 모습은 공사비용의 문제로 공간을 최대한 작고 실내를 단순하게 만들며, 불에 타지 않는 인공재료를 사용한다. 이 재료는 특정한 주파수대의 음만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고른 음향을 들려줄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실질적인 건축음향학이 도입되기 전의 옛 음악당은 소리의 반사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도입된 후 보다 더 좋은 구조물이 된 셈이다.


 소리의 반사를 이용한 또 다른 경우는 없을까? 이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 소리는 확실히 변한다. 앞에 소리가 우리들에게 의사소통과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전도사였다면, 이제 소리는 수중탐험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는가? 1912년에 가장 튼튼한 배라고 자신하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부딪혀 무참히 침몰한 사건을 재현한 영화이다. 사실 소리가 직업을 전격적으로 바꾼 원인에 이 타이타닉호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만약 물속에 빙산의 존재를 멀리서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참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서 대두된 문제인 것이다. 빛과 같은 전자기파는 물속에서 단지 수 m의 짧은 거리만을 전파하면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거기다가 태양빛이 없는 밤중에는 설상가상이다. 무언가 새로운 전파 매개체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소리’가 낙점되었다. 역사적으로 선원들은 오래전부터 공기 중보다 밀도가 높은 수중 같은 액체에서 소리가 더 빨리 진행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 과학자들은 이 소리의 속도가 일정함을 알게 되어 유용한 수단임을 자각했다. 즉, 음파를 보내고 받는 기술을 발달시켜 기기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소나{SONAR)라고 부르는 음향탐지기는 소리를 발생시키고 반사돼오는 소리를 통해 장애물을 식별하는 장치로서 타이타닉호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했다. 한편, 수중에는 파도, 바람, 해양생물들에 의하여 많은 공기방울이 생기는데, 흥미롭게도 이 공기방울은 소리의 지위를 높이는 효과를 불러왔다. 공기방울들은 용수철과 같이 진동운동을 하는데 이로 인해 공기방울은 소리를 방출한다. 예를 들어, 반지름이 1mm정도 되는 공기방울의 경우 3kHz 이상의 수중 소음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이 집단 운동을 하면 실제 해양에서는 이보다 훨씬 낮은 수백Hz 대역의 소음이 주로 관측된다. 이것을 이용하면 어업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데, 물고기들이 움직이며 내뿜는 소리를 이용하여 어군의 밀도를 알아내고 어획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현재는 이런 것들을 영상화시키는 기술로까지 발전했다. 석유시추를 위한 해저면 상태나 바다의 여러 밀도의 오염 물질들을 정확히 영상화함으로써 해저환경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다. 이렇게 소리는 여행하면서 우리에게 바다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바다에서 소리를 이용하는 것에 앞서서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선배가 있다면 믿어질까? 바다의 왕자 돌고래가 바로 그 분이다. 고래들은 오랜 수중생활을 통하여 시각기능과 후각기능이 퇴화한 반면, 소리를 감지하는 기능이 잘 발달돼 있다. 그래서 이 고래들은 음파를 사용하여 동료와 적을 구분하고 먹이의 위치를 찾는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발산하는 보통의 음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일명 ‘초음파’라 하여 보통의 음파보다 진동수가 높아 우리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이다. 즉,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약 20Hz~20000Hz 정도임에 반해 초음파는 진동수 20000Hz를 넘는 음파를 말한다. 진동수가 클수록 파장이 짧아 한 방향으로 집중하여 전파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대상을 더 자세히 식별할 수 있으므로 수중 탐지에 유용한 도구가 된다. 우리는 이제 돌고래로부터 소리의 새로운 매력을 배워간 것이다.


 초음파는 진동수가 크기 때문에 에너지가 크다. 용수철을 세게 흔들수록 주파수(진동수)가 커진다는 것으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우리 일상에 사용하는 초음파 세척기를 보면 이런 초음파의 큰 에너지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그릇을 깨끗이 닦는다 해도 미세한 알갱이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이 그릇을 세척기에 넣으면 이런 숨은 알갱이들까지 깨끗이 해결된다. 이것은 초음파의 물질을 뒤흔드는 힘이 강하여 기포를 파괴해 화학적, 열적 작용을 이끌어 올림으로써 세척액의 화학반응과 분산반응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것이 세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리였다면, 다음은 물체가 이상이 생겼음을 탐지하는 기술가로서의 역할을 소리는 충분히 실행한다.


 재료의 내부에 결함이 존재하면 그 재료는 본래의 강도를 나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제품도 사용하는 도중에 점차 약화되어 파손된다. 그리고 현재 생산되는 제품의 크기는 점차 소형화되는 추세로서 이러한 경우에는 매우 작은 결함일지라도 제품의 기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결함을 찾아야지 않겠는가? 제품을 직접 뜯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파괴하지 않고 결함을 찾아낼 방법, 그것이 바로 비파괴 검사이다. 특히, 초음파의 비파괴 검사는 X선이나 ϒ선과 같은 방사선의 투과시험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간단한 원리는 파원에서 발생된 초음파는 입자의 진동을 유발하면서 매질 내를 전파하고 그 전파 특성이 매질의 특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이용한다. 즉, 초음파가 물체 표면에 도달하면 표면이 진동하게 되고 이 진동신호는 표면에 부착된 센서에서 검출된다. 따라서 수신되는 초음파신호를 적절히 분석함으로써, 재료의 보이지 않는 균열이나 구조적인 결함 같은 매질에 대한 여러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


 소리가 비파괴 검사에서 X선 같은 방사선과 같이 쓰였다면 이제는 이 소리만이 독창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야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의료 분야의 활용이다. 초음파는 방사선인 X선이나 ϒ선과 달리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인체의 이상 유무를 비파괴 검사와 같이 자유롭게 판단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초음파가 인체 내부로 전파되면서 인체조직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을 포착해 쉽게 인체 내부조직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이 달라지는 물리적 특성은 우리가 밝혀낸 파동의 온갖 성질을 지식으로서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니, 명칭을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과학은 점차 지식을 쌓아가며 이렇게 새로운 과학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과학에 쓰인 파동의 성질을 살펴보며 현대의 과학으로 밝혀진 소리의 실체를 정리해보자.


 먼저 소리의 속도부터 시작한다. 앞에서 대기 중보다 수중에서 속도가 빠르다고 한 것처럼 소리의 속도는 매질의 밀도에 의존한다. 즉, 물체가 단단할수록 속도는 커지는 것이다. 또, 온도에 따라 속도가 변하게 되는데 공기가 따뜻하면 분자들이 더 빠르게 움직이므로 음파가 전달되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 매질의 밀도와 온도에 따른 속도를 측정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인체조직내의 초음파 속도는 대기 중의 음파 속도에 비해 약 다섯 배 정도 빠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소리의 반사는 콘서트홀이나 수중음향탐지 그리고 비파괴 검사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인체 내의 어느 매질에서 입사하여 다른 매질의 경계면에 충돌하여 반사되는 파를 분석해보면 두 매질의 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예로서 종양과 같은 것은 주위의 매질의 밀도와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발견에 매우 유용하다. 앞에서 설명한 반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사면의 크기가 입사한 초음파의 파장에 비해 커야 하는데, 만약 반사면의 크기가 초음파의 파장과 비슷하거나 보다 작으면 많은 방향으로 산란된다. 이것은 계곡물 한가운데에 떠있는 큰 돌 주위의 흐르는 물의 모양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허파 속에는 공기가 찬 작은 주머니가 있는데 여기에서 산란이 일어나므로 이 산란파를 이용하면 허파 속에 물이 차 있는지의 여부를 검사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종양과 같이 매질의 밀도가 다름을 이용하여 짐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초음파를 사용하기 위해 알아야 할 또 다른 사항으로는 굴절과 감쇠가 있다. 굴절은 초음파가 경계면에 반사되는 가운데 투과되어 다른 매질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진행방향이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즉, 물이 담긴 유리컵에 연필을 넣고 보면 경계면을 중심으로 굽어보이듯이 빛의 굴절과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어쨌든 이 굴절로 인해 우리가 보는 영상을 일그러지게 하므로 이것의 정확한 지식이 분명 필요하다. 또, 감쇠는 말 그대로 초음파가 조직 내를 진행할 때 열이나 반사, 산란 등이 증가함에 따라 초음파의 세기가 갈수록 감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뼈나 허파에서 높은 감쇠율을 보이므로 조사를 할 때 큰 방해가 된다.


 이런 많은 지식을 가지고 컴퓨터와 연동하여 우리들은 안전하게 인체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진단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리가 인간을 치료할 수단이 된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인데 더 나아가 이것이 이제는 어머니와 뱃속에 자라는 아기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청진기를 통해 아기의 살아 숨 쉬는 심장소리를 듣던 것이 이제 어머니는 화상으로 아기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한낱 귀에 들릴 줄만 알았던 소리가 어머니 뱃속에 고이 잠자는 아기에게 사랑의 소리를 불어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장구한 세월동안 소리는 변해왔다. 원시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소리로부터 듣고 즐기는 아름다운 음악의 소리, 인간에게 커다란 위용을 보여줄 바다의 소리, 그리고 아이와 엄마의 행복한 만남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소리는 과학을 만들었으며 과학은 소리를 만들었다. 또 어떠한 과학이 소리를 어떻게 변하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질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던 소리는 이제 블랙홀에서 음파가 방출되는 것이 관측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원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소리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격동하는 소리의 변천 가운데에 끝까지 변하지 않을 소리가 있으니,

평화로운 새의 울음소리와 활기찬 인간의 웃음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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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시간 참 빠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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