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기로.

2011. 11. 22. 01:16

제대로 써야겠다. 지난 글은 감정의 초점이 없었다. 
적어도 내 생각을 털어놓기 위해서는 내면의 미묘한 감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 곁들여져 손이 움직여야 한다. 과거의 글들을 읽다 보면, 분명 그 당시 그 시간의 격양된 감정이 떠올려지곤 한다. 이제 그 과거와 같은 형태의 글은 더이상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내면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닌, 적절하게 감정을 조절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방식을 조금은 터득하게 된 연륜일까. 적어도 나이는 헛먹은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이십대의 중반에 다다른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이 먹은 사람이 더 나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생각의 방향과 그로 향하는 과정이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제 곧 있으면,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세상물정을 일부러 등한시하던 나의 태도를 바꿨고, 나만의 아이디어로 설계하고 창조해내는 과정은 그 당시 물리학 학문을 공부할 때 만큼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하는 일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재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여 나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것을 목표로, 지금까지 무작정 달려왔다.

4년 전의 목표가 성공했다면, 지금쯤 큰 웹서비스로 성공하여, 어떠한 절박함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절박함 없이 사는 것이 나에게 어떤 행복을 던져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할지라도, 과거도 현재도, 나를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은 돈이라고 보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명, 나 또한 이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고, 돈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 또한 불행해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가짐으로써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누구나 꿈이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이 세상을 바꿔야한다는 혁신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 나는 이 두 부류에 해당되지 않는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조용히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모든 인간은 그러하기에, 공정하게 경쟁하여 나의 행복을 찾고 소소한 인생을 살면 충분하다. 이 세상에 그리 대단한 삶의 방식은 없다.

그렇지만,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로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재미가 있다. 결국, 내가 바라보는 모니터와 컴퓨터도 4년전에 비해 월등히 빠르고 커다랗게 발전된 것을 보면, 이 기술의 한복판에 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거다. 음악과 소리도 그렇고, 기존에 없었던, 누군가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창조하고 그것을 향하는 과정은 내 삶의 매우 재미있는 놀이이다.

하지만, 그 놀이를 하기에 앞서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 사람들과 부대껴 사는 사회에서 그들에게 서비스를 하고, 그들의 돈을 뺏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했다. 재미있게도, 그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내부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단순한 패기로 달려들면 해결될 것이라는 초기의 낙관적인 태도도 이제는 겨울바람에 허덕이는 낙엽처럼 사그라들었다. 이 아이디어가 좋든 나쁘든, 결국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을 해야하고, 그만큼 투자할 수 있는 환경과 제대로된 기술과 팀, 시기적절한 운이 따라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만 벌여왔다. 그래도 헛된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든지 관련 책과 웹사이트를 뒤져보며 개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도 쌓았고, 어떻게 하면 팀이 실패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이 시장의 흐름과 앞으로의 미래도 추측할 만한 배경지식도 구축했다.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 사업계획서 써서 발표해서 많이 까여보고,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방식과 관계에 대한 잘못된 접근도 곱씹어볼 기회가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실패라는 관점을 들이댈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불완전한 인간의 게임일뿐 아니라, 앞으로의 수많은 실패에 비하면 미리 바이러스를 집어넣는 예방접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회가 주는 실패를 받아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라도 절박해야 한다. 제대로 된 준비를 미리 끝내놓고, 기회가 오면 그것을 붙잡아 실수 없이 실행해야 한다. 좋은 기회가 얼마만큼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최상의 운이 따라줄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빠듯한 일상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이 세상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주시하면서, 다음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파악할 만한 여유도 지니고, 그 생각들의 기반이 될 중요한 지식들을 섭취하면서 스스로를 독려해야한다.

그래서, 요즘은 기존의 생각들을 털어버리고, 사회,경제 등의 다양한 책들로 부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고, 모르는 것을 채워가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그 책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세상이 복잡하지 않다면, 이렇게 노력해야할 이유가 없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답답하다. 이러한 수많은 지식에 자칫 함몰되다간, 모든 세상을 푸념하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하고 여행자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삶의 방식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만족을 모르는 것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제 예전처럼, 외로움을 타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결국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과 내면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상, 그 관계의 끝은 똑같다고 본다.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도, 그 사람이 나를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것도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이 흐르듯이 수많은 사람이 내 곁을 스쳐가고 죽을 때는 홀로 쓸쓸히 갈 수 밖에 없다. 가끔씩 과거의 그런 사람들이 생각나지만, 모두 잊어버려야 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를 아는 사람들과 가끔씩 노는 것만으로 족하다. 이제 그리 어려운 것도 없다.

늙어간다. 얼굴의 수염도, 붉게 삭아가는 피부도. 그리고 눈에 보이는 흰머리와 체구가 작아진 부모님의 얼굴을 봐도 그렇다. 그래도 그들은 좀 더 잘 살아가려고 한다. 나도 좀 더 잘 살고 싶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내 생각의 방향만 잘 비틀면 된다. 잘 살고 있다고 낙관하며 살면 된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20대의 중앙 기로에 서서,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하다 보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희망을 낙관하며 사나 보다.
어쩌면, 그런 희망과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짧은 인생의 짧은 위안이 아닐지. 

 
Posted by Elegant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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